야스퍼스의 《비극론》과 실존을 위한 근거

ipecnews 기자

작성 2020.08.04 13:22 수정 2020.08.04 13:26

 ​야스퍼스의 《비극론》과 실존을 위한 근거


 

실존철학자 야스퍼스는 비극론을 통해 실존을 위한 근거를 제시해주었다. 그에게 있어 비극은 현실 인식과 맞물린다. 철학자는 31살 때 1차 세계대전을, 56세 때 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특히 두 번째 전쟁 경험에서는 경력에 대한 심각한 타격뿐만 아니라 생존에 대한 위협까지 느꼈다. 1937년 나치당이 집권하고 있던 시절에 이미 교수직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유대인의 아내를 두었다는 이유로 이민도 마음대로 떠날 수가 없었다. 1942년 이민 허가를 받아내기는 했지만 아내는 독일에 남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야스퍼스는 이민을 포기했고, 만약 체포되면 아내와 함께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기도 했다. 이런 삶의 경험이 고스란히 철학으로 스며들었다. 이렇게라도 살아야 할까? 살아야 한다면 어떤 마음으로 삶에 임해야 할까? 등 수많은 질문들이 철학자를 고민하게 했다.

전체주의의 이념에 대한 반감은 야스퍼스의 철학에 깊은 뿌리를 형성한다. 그는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 것들이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추궁했다. 그는 한계상황을 철학적 질문으로 제시했고, 4대 성인을 언급하며 인류의 모범을 가르쳤으며, 비극을 연구하며 현존재의 현상을 밝히려 했고, 거기서 비극적 분위기를 극복하는 길을 모색했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물줄기를 실존철학이라는 큰 강물에 맞대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자기만의 색깔을 유지한다.

유신론적 실존철학’, 이것이 야스퍼스 철학을 지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야스퍼스는 니체의 허무주의 사상에서 뻗어나간 줄기와 같다. 극복의 이념을 한계상황이라는 개념으로 증폭시켰고, 초인이라는 개념을 포괄자라는 개념으로 확장시켰다. 그는 신을 긍정하면서도 실존의 이념을 언급할 수 있는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신과 함께 실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준 것이다.

190219세의 청년 야스퍼스는 스위스의 질스마리아를 들리기도 했다. 니체가 무를 기다리다가 영원회귀 사상을 깨달은 곳이다. 소위 차라투스트라의 고향이다. 그리고 니체와 마찬가지로 훗날 바젤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다 퇴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을 마감했다. 왠지 모르게 니체의 삶과 절묘하게 겹치는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비극은 역사적 사실의 문제라고 니체는 말했다. 야스퍼스도 비극을 통해 사실의 문제에 다가서면서도, 그것을 기점으로 하여 철학적 신앙과 영원한 철학으로서 세계철학을 지향한다.

저자 이동용은 한계상황에 대한 인식을 동그라미라는 비유로 설명을 이어간다. 연못에 돌 하나가 던져지면 수면 위로 동그라미가 형성된다. 하나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안에서 새롭게 동그라미가 탄생한다. 그리고 끝까지 퍼져나간다. 그 끝이 한계다. 모든 움직이는 것은 힘이 다할 때가 있다. 사람에게는 죽음이라는 현상이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그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야 한다. 그때 말로만 듣던 단말마의 고통도 겪게 될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살아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어서 두렵기만 하다.

철학자 야스퍼스의 인생에 돌멩이 하나가 던져졌다. 나치라는 독재상황이 그의 삶을 통째로 위기상황에 처하게 했다. 외부세력이든 내부세력이든 어느 하나의 세력이 독재를 펼치게 될 때 지식인들은 낭만주의적인 성향을 드러내게 된다. 현실을 부정하고 내세를 동경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과 여기는 인정할 수 없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위로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삶은 받아들일 수 없는 혐오스러운 것으로 인식되고 죽음은 꿈과 희망으로 충만한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저자 이동용은 이런 위기상황을 야스퍼스가 어떻게 철학적으로 극복해내고 또 승화시켜나가는지 치열하게 관찰한다.


Copyrights ⓒ 출판교육문화 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ipecnews기자 뉴스보기